파리 패션위크 SS26은 이번 시즌의 마지막을 장식하면서, 그 어느 도시보다 감정이 짙게 깔린 무대였다. 런웨이는 화려했지만 조용했고, 실험적이면서도 단정했다. Milan이 절제의 균형을 보여주었다면, Paris는 그 절제 속에서 감정을 섬세하게 풀어냈다. 모든 브랜드가 각자의 언어로 ‘시간’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단순히 옷이 아닌, 순간과 기억, 감정의 흐름을 옷의 형태로 표현하려는 시도였다.

Chanel과 Dior, 전통의 깊이를 다시 쓰다

Chanel의 런웨이는 이번 시즌에도 클래식한 실루엣 위에 실험적 리듬을 얹었다. 트위드는 여전히 중심에 있었지만, 그 짜임과 패턴, 커팅에서 완전히 새로운 감각이 느껴졌다. 과거와 현재가 충돌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이어졌고, 그 안에는 ‘지속되는 우아함’이라는 브랜드의 철학이 담겨 있었다. Dior는 반대로 내면을 향했다. 강렬한 장식 대신, 섬세한 곡선과 음영으로 여성의 감정을 표현했다. 이번 컬렉션은 드라마틱하지 않았지만, 감정의 깊이가 느껴졌다.

Loewe와 Balenciaga의 두 가지 시선

Loewe는 이번 시즌에도 예술과 일상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들었다. 조형적인 구조와 부드러운 곡선이 공존하며, Jonathan Anderson 특유의 위트가 컬렉션 전체를 이끌었다. 옷은 실험적이었지만 차가운 인상은 없었다. 오히려 따뜻하고 인간적인 감각이 곳곳에 배어 있었다. Balenciaga는 정반대의 방향에서 이야기를 풀어냈다. 거친 현실, 그리고 그 안의 우아함. 디스토피아적 분위기 속에서도 디자이너는 인간의 형태를 강조했고, 패션이 어떻게 감정의 언어가 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었다.

감정의 런웨이, Paris가 보여준 여백

이번 시즌의 파리는 강렬한 메시지보다 조용한 감정선에 집중했다. 런웨이 위에서 옷은 단순한 오브제가 아니라 하나의 이야기로 존재했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들은 브랜드의 역사를 다시 꺼내어 ‘지금의 감정’과 연결시켰다. 공통적으로 느껴진 것은 ‘속도의 완화’였다. 급박하게 변하던 패션이 잠시 숨을 고르며, 느리게 자신을 돌아보는 순간. 그 속에서 탄생한 옷들은 완벽하게 계산된 듯하면서도, 묘한 불안과 여백을 품고 있었다.

패션이 시간을 기억하는 방식

Paris Fashion Week SS26은 결국 시간의 기록이었다. 브랜드들이 과거의 아카이브를 다시 해석하고, 그 안에서 새로운 서사를 만들어가는 과정은 단순한 회고가 아니었다. 그것은 자신이 어디에서 왔고,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묻는 질문이었다. Milan이 균형을 말하고, London이 실험을 탐구했다면, Paris는 감정으로 마무리했다. 패션이 여전히 예술로서 존재할 수 있음을, 그리고 그 예술이 인간의 시간을 기억할 수 있음을 보여준 시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