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ndon Fashion Week SS26 — 실험과 전통이 교차한 무대
이번 런던 패션위크 SS26은 예상보다 조용했지만, 그 속에는 누구보다 강한 개성이 숨겨져 있었다. 런던은 늘 그랬다. 패션의 중심이자 실험의 도시. 다른 도시들이 완성된 이미지를 내세울 때, 런던은 여전히 진행 중인 과정의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이번 시즌 역시 그런 ‘과정의 패션’이 이어졌다. 각 하우스는 자신만의 리듬으로 전통과 현대, 실험과 실용 사이를 오갔다.
Burberry의 절제된 변주
Burberry는 런던이라는 도시의 정체성을 가장 명확히 드러낸 브랜드였다. 클래식한 트렌치코트를 중심으로, 디자이너는 과거의 유산을 재해석했다. 실루엣은 한층 간결했고, 컬러 팔레트는 짙은 모래빛과 세피아톤으로 구성되었다. 런웨이의 분위기는 차분했지만 그 안에는 새로운 긴장감이 있었다. 브랜드가 가진 오랜 전통에 실험적인 구조를 더하면서 ‘변화하는 고전’이라는 개념을 만들어냈다.
Simone Rocha와 Roksanda의 감정적 구조
Simone Rocha는 이번 시즌에도 섬세한 감정의 결을 패브릭으로 표현했다. 거친 오간자와 망사, 그리고 복잡한 레이어링이 공존하며 한 벌의 드레스 안에 여러 감정이 얽혀 있었다. 그것은 여성성의 확장이자, 감정의 시각화였다. 반면 Roksanda는 조형적인 실루엣을 통해 더 큰 서사를 그렸다. 볼륨감 있는 형태와 깊은 색의 조합은 예술 작품처럼 구성되어 있었고, 이는 브랜드가 20주년을 맞아 자신만의 언어를 더욱 확고히 했음을 보여준다.
신진의 감각 Chopova Lowena와 Di Petsa
런던 패션위크의 진짜 에너지는 언제나 신진 브랜드에게서 나온다. Chopova Lowena는 이번에도 자유롭고 예측 불가능한 감각을 선보였다. 스포츠와 전통 복식, 스트리트웨어의 경계를 넘나들며 하나의 룩 안에 여러 문화가 공존했다. Di Petsa는 완전히 다른 접근을 택했다. 물결과 피부의 질감을 형상화한 드레스, 감정과 신체의 경계를 시각적으로 드러내는 방식으로 런던의 실험정신을 증명했다.
패션의 온도, 런던의 방향
이번 SS26 런던은 화려하지 않았다. 대신 정직했다. 브랜드들은 완성보다 탐구를 택했고, 상업적 트렌드보다 자신들의 언어를 지키는 데 집중했다. 그 결과 런던은 다시 한번 패션의 실험실이 되었다. 전통의 옷감과 새로운 재료, 클래식한 형태와 급진적인 아이디어가 공존하는 장면들은 런던만의 자유로운 기운을 보여준다. 패션이 시장의 논리를 넘어 문화적 담론으로 확장될 때, 그 출발점에는 언제나 이 도시가 있다.